' 부모학과 : 함께 부모교육에 대해 공부해요 ! _ 조기마감 공지 ' 에서의 배영재 님의 과제

2016. 12. 14
글의 제목

독서토의 내용입니다


아래 해당 과목 주의 사항을 체크해주세요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했습니다,부득이한 경우 글이 삭제될 수 있으니 가급적 개인 블로그에도 기재하시면 좋습니다,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과목을 이수했습니다


기본 주의 사항을 체크해주세요

사진 첨부 시 복붙하면 깨지니 일일이 첨부해주세요,글은 인터넷에 올리는 것처럼 짧게 쓰지 말고 문단으로 이어서 작성해주세요


모임 후기(단체 사진/후기 내용 포함)



김하연

부모력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예전에 자신이 받았던 교육의 잘못된점이 있었다는것을 깨닫고 실망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 좋은 부모가 되기위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부모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부모력의 비밀은 마치 부모 심리학의 기초처럼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게 되어있다.

이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부모 교육에 대한 실망감을 비추기 보다는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육아를 할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일단 우선되는 목표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완성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음.


안송이 


현재의 시국을 보면 문제들이 많이 보인다. 정치를 하는 사람과 정치의 시비를 가르는 사람. 그 사람들을 보면 미래의 아이가 자랄 환경에 대해 낙관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부모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으로부터 나오는 부작용들이 맞물려 지금에 이르는 잘못된 상황이 나왔다는 것이다. 잘못 정착된 시스템은 그 결과물이 다시금 시스템을 악화시킨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문제론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부터가 중요한것 같다. 불행중 다행인것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어느정도 나오고 있으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조금씩 변화의 바람의 일원이 되면서 나중에 키울 아이에게 지금과 같은 사태가 단지 해프닝 정도로 설명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싶다고 한다.


김형섭 

현대인의 삶은 복잡한 관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질병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다. 부모도 예외는 없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중 둘중 한명은 분노조절장애증세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중 10퍼센트는 당장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이들중 부모가 포함되지 않으리란 증거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양육되는 아이들은 그만큼 위험에 노출이 되기 쉽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설사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도록 의도한다 하여도 행동을 보고 모방을 하기 때문에 어른은 아이의 거울과도 같다는 말이 어느정도 합리적인 말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하여 부모학과를 참여하여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해야 할일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아야 할 일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형의 아이들은 나중에 이렇게 노력하는 형의 모습을 알게 된다면 많이 뿌듯해 할것이다.


김태양

예비부모교육이라는 책을 읽고 부모에 대해서 알아둬야 할것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볼수 없는 용어 정의, 해석, 예시들이 있어서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소한 단어 때문에 책을 읽는 속도가 다소 느리지만 나도 쉬운 해설서임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필요한 정보들이 많이 모여있다. 실전에 필요한 이야기는 이 책외에도 많겠지만 부모라는 단어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워 나갈수 있는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하였다


부모 교육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교육과 나의 행동과 그로부터 느낀 점 등을 많이 떠올려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이다.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내가 어릴 적 받았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 막연하게 알고 갖고 있던 추측을 사실로서 접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받은 교육이 좋은 교육은 아니었지만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 교육에 대한 공부를 함으로써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개선 의지를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부모가 되기 전에 겪을 수 있어 기쁜 것이,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표현하듯, 부모가 좋은 자아를 가꾸어나가야만 비로소 부모 교육이 빛을 낼 수 있어서다. 전에 나의 자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심리학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심리학책을 읽자하니 뭔가 방대하고, 복잡할 것 같아서 나의 내면을 알고 싶음 욕구가 있어도 미뤄두고 말았다. 지금 이 책을 보면 부모 교육이 심리학의 쉬운 버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분명 다른 학문이지만, 좀 더 성숙한 자아 형성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좋은 부모가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제 나는 성인이 되었고 스스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부모의 도움 없이도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있고, 또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부모 교육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 기대 이상으로 많아서 정말 잘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직 나는 20대이고, 부모가 되려면 10년 어쩌면 그 이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죽기까지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시간들은 ‘나’라는 사람을 발전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부모로서의 자질을 갖추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앞으로의 배움을 토대로 나 자신을 교육시킨 다음, 내 아이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안송이

인상깊은 구절 

1) p.30 /엄마는 정희의 일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으며 정희가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화가 나고 불안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학교 급식 반찬으로 무엇을 먹었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먹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의 증상은 자신감이 없고 의욕이 없는 것인데 상담을 통해 이런 문제를 고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엄마는 말하는 틈틈이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의 자세며 행동을 교정했다. " 똑바로 안아야지, 다리 떨리말고 ! 그거 만지지마, 왜 이렇게 부산하니? 어깨 좀 펴라니가, 목 아프다면서 무슨 차가운 물을 마셔.." 엄마의 지적이 이어질수록 상담가인 나 역시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즉시 개입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와 잠깐 상대하는 동안에도 아이에게 왜 무력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지,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꼈졌다. 2) p.34 /무기력은 통제감을 잃어버리는 데서 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뭔가를 변화시킬 수 없고 어느 것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고 느끼면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아이들의 눈빛은 공허하고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밀려오고 틈만 나면 자고 싶다. 의미나 목적 없이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며 열등감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무기력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자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보복이다. 즉 자신의 감정과 신념, 자신의 삶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보복인 것이다. 아이들은 원래부터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무기력을 선택 한 것이다. 부모가 말한 대로 열심히 살지 않아야만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무기력으로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거부하고 있다. 3)p.40 / 노는 일이나 친구 사귀는 일과 공부는 절대 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훈련받았다. 그래서 둘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교우관계는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여야 한다. 아이들은 어떤 인간관계도 공부에 우선할 수 없다고 배웠다. 관계와 정서적 경험을 경시한 대가로 여러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학 가면 다 나아질 것이라 믿고 무시해버린다. 하지만 대학에 가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진다. 발견되지 않고 치료되지 않은 증상은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4)p.43 / 이 청년은 어느 자리에서나 내가 잘 해내는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고 왜 또다른 사람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사람' 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어려운 과학문제를 풀어내고 외국어로 유창하게 토론수업을 해내며 우수한 성적표를 거머쥐었던 그가 이 지경이 되도록 부모와 학교와 사회는 오히려 공부 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를 칭찬해주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성공적으로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그가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눈치와 융통성 이다. 그것은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것 이기에, 오로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몸으로 겪어내면서 알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것이다. 5)p. 45 / 사람과 정서적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 수준밖에 안 되지만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수준의 인지 능력을 갖춘 이들은 주로 좌뇌와 우뇌이 불균형이 문제라고 진단 받는다. 그 원인은 너무 복합적이어서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과 더불어서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지진아 이며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되고 가정에서 부모가 될 것을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6)p.53/ 그래서 상민이는 이제 부모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결론이 날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에게 닮고 싶은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별로요. 아니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상민이는 부모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의 지식과 교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빤히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궁금한 문제에 대해 부모는 대답해줄 수 있는 능력도, 그럴 의사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상민이는 묻지도 않고, 말을 걸지도 않고, 대답도 잘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7)p.55/ 어른이라면 아이가 기댈 수 있어야 한다. 기대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야 하고, 기대라고 억지로 잡아당기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다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난다. 아이와 같은 수준에서 싸우고, 아이에게 자신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짓 삶을 강요하고, 아이가 말을 안들어준다고 토라지고, 아이의 고민을 묵살하고, 아이의 고통을 다 안다는 듯 우습게 여기는 것이 부모의 권리일까? 그것이 어른다운 모습일까? 그런 부모는 아이들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를 싫어하고 우습게 여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처럼 어른스럽지 못하다. 8)p.57 /그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승자가 됐지만, 단단한 사회의 시스템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의 고유한 색깔이 표백돼버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최초의 주체적인 항의이자 유일한 저항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누구누구의 아들과 딸로 살아내기 위해 결국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 허무하고 노예 같은 삶을 되풀이하고 대물리하게 되리라는 것, 이굴레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자살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자살 외에 다른 탈출구가 없다고 믿는 이들에겐 자살이 옳으냐 그르냐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9)p.76/지금의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일조차 귀찮아한다. 자신의 욕구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 무력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들에게 상상하고 싶은 자기 삶에 대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만 쳐다보고 있으니 자신을 쳐다 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10)p.77/엄마에 의해 주도된 자기 주도학습을 하는 상위권 아이들이나 공부를 억지로 비주도적으로 해드리는 아이들이나 속이 텅 비어 있는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공부 스케줄만 주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이 생기겠는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상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11)p.77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이 없음에도 상위권 아이들이 겉으로는 그다지 텅 비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들이 목표 지향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삶만을 살아온 아이들은 목표가 없는 삶을 오히려 불안해한다. 기분이 우울하고 불안하면 자신에게 '나는 지금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를 묻지 않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진다. 늘 무엇을 해내고 이루어내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무엇을 못 하고 안 하고 있는 상태를 곧 뭔가 잘못되고 있는 상태로 받아들인다. 어떤것을 안 하는 쪽이 다른 어떤것을 제대로 하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더욱 문제인 것은, 겉으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목표를 달성하게 될까봐 불안해한다는 점이다. 목표를 달성한 순간 더 높은 목표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고, 그렇게 달성하고 나면 더 높은 목표를 또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끝없이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실은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자신이 정한 목표로부터 자신이 소외되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목표가 없으면 사는 이유가 없어질까봐 너무나 두렵다. 결국 이들에게 목표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동시에 영원히 달성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 느낌, 가치, 욕구, 경험처럼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지 못한 채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 또 세우는 반복속에서 강박적 불안을 되풀이할 뿐이다. 12)p.81/연필과 청진기로 상징되는 아이의 응답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명문대와 사회적 성공으로 대체된다. 아이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교와 사회는 그 응답만이 정답이라고 노골적으로 주입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아이는 그 응답을 현실화 하기 위해 자신만의 응답을 찾으려는 의지도, 용기도 내지 못한다. 명문대와 사회적 성공이 과연 나의 응답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탐색해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13)p.83/이것은 대한민국 부모와 사회의 증상이 만들어낸 고통을 아이들에게 전가한 결과다. 태어나기 위해, 잉태되기도 전에 부모와 일방적 계약을 맺은 아이를 상상 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대한민국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태어나고 길러진다. 이것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부모들이 가진 증상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의 증상은 결국 일그러진 대한민국 부모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14)p.100/아이는 부모의 증상이라고 한다. 부모의 문제로 증상을 나타내고 고통을 받는 사람은 바로 아이다.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을 통해 우린 아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모의 문제, 가정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절망하고 마음을 접은 다음, 남편에게 갈 몫까지 쏟았건만 결국 아이와의 관계마저 파국으로 치달을 때 엄마들은 상담실을 찾는다. 그들에게 위기의 근원가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5)p.132/아버지들이 아버지로서의 자신이 점점 소멸되는 것도 불사하면서까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대가로 아이들은 어떤 가정과 가치와 세상을 물려받게 되는 것일까? 아이들은 돈 버는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아버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돈만 벌어대면 아버지 노릇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앙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 만드는 아내가 될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차지하는 길이 성공하는 길이라는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무능력하고 게으른 자들이라 멸시하고 짓밟는 기업가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문제아라 생각하는 교사가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애를 쓰다가 결국 99퍼센트가 1퍼센트를 위해 희생하는 세상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성공을 위해 자신을 소멸시키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6)p.134/참고 영상 : Ted -> 알랭드보통 / 직업의위기, 현대인의 불안 17)p. 136 /사람에겐 모두 조금씩 속물근성이 있기 마련이고, 나의 어머니에게도, 당신들의 어머니에게도 속물근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보통이 강연에서 속물근성이 오늘날 전 세계적인 하나의 현상이라며 물질적인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두는 세태를 경계한 것처럼, 아이의 가치와 미래를 사회적 성공이나 물질적 가치와 동일시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18)p.137/물론 자식은 모두 부모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고,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의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부채감에 가깝다.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 관계가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로 변질되었다고 해야 할까.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투자 원금을 갚고 거기에 이자까지 상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부모의 기대를 이루어줘야 하고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어떤 부모와 자식 관계든 이런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부채감과 채무를 갚지 못하는 데 대한 불안에 잠식될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게 된 상황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p.138/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소망과 자신을 지키려는 욕망 사이에서 힘겹게 갈등한다. 물질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부모에게서 결핍과 불안을 대물림받는다. 허기라는 절대적인 가난에서는 벗어났지만 우리 아이들은 누구도 결코 채워줄수 없는 마음의 가난을 앓고있다. 20)p.139/소설가 박완서는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땐 언제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갑갑하면 옆으로 밀쳐내고 원하면 끌어당기는, 그런 자리로 만족할 부모가 요즘 과연 있을까? 그저 져주고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 물러나고 언제 다가갈지를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에 맞출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옛날 부모를 다시 살려내자는 말이 아니다. 희생과 부채감, 상실과 결핍으로 얼룩진 부모와 자식 관계를 언제까지 계속할 셈이냐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 모든 인간 사이의 관계는 결국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돈을 주고받는 거래와 다른 이유는 때로 먼저 마음을 더 내어주고, 때로 자신의 마음을 접기도 하는 어떤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또다른' 의미의 희생이라고 불러도 좋다. 마음의 희생 말이다.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희생한다는 것은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이에겐 아이만의 삶이 있음을, 아이의 욕망이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이에겐 아이만의 삶이 있음을, 아이의 욕망이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마음은 결코 희생하지 않고 돈으로 희생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과연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돈으로 키운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마음을 돌려줄 수 있을까? 마음을 희생할 줄 아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이전에 제대로 된 어른이어야 한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서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한민국 과연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1)p.172/ 도대체 이들에게 가정은 무엇일까? 가정을 지킨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정이 그녀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외도의 순간에도 자신이 이렇게 노력함으로써 가정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가정의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항변하는 '가정 지키기 프로젝트'로서의 외도는 흡사 한국의 교육을 지탱하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불안한 동거를 옮겨놓은 것 같다.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으며 공교육을 빈사 직전에 몰아넣으면서도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공허한 말을 남발하는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가 별로 없어 보인다. 남편은 발기불능, 관계불능에 그저 명목상 가장일뿐이고, 실질적으로 아내의 삶의 역동에 불을 지피며 가정을 지켜주는건 위험하기 그지없는 외도라는 것. 사교육에 의해 공교육이 지탱된다는 역설과 같은 구조다. 한 번도 공교육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아니 교육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본 적 없는 엄마들과, 사랑이 무엇인지, 관계가 무엇인지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보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찰해본 적 없는 아내들. 그들이 만들어가고 유지해가고 지켜가는 이 한국 사회의 가정과 교육은 오늘날 외도로써만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이들 역시 무단결석도 하고, 폭력이라는 의식도 없이 폭력을 저지르고, 일탈을 감행하며 의미 없는 등교행위를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2)p.181 /관계에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어떤 것을 요구한다. 요구는 은밀하거나 요구의 티가 나지 않는 것일수록 좋다. 그런 다음 상대가 그것을 해주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티가나게 하면 안된다. 가능하면 약간은 만족하지만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 된다. 문제가 큰 것이면 대놓고 무시해도 된다. 아니면 은근히 두고두고 불만을 표시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는 위축되고 미안해지고 자기 능력에 대해 불신이 들며서 급기야 주눅이 들 것이다. 또 하나는 상대의 노력을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남편들이 자신의 어려움, 가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면, 아내들은 "제발 생색 좀 내지마. 그건 남자들이면 다 하는 거야" 라든지,... 아내들이 결국에는 이겨내고 마는 방법 중 또 하나, 가장 흔하고 잘먹히고 부작용이 없는 방법이 있다. 자기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다. "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이런 말은 애교에 속한다. 23)p.183 /텔레지번에서 방영하는 가족 프로그램 중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것이 있다. 연이어 <엄마가 달라졌어요>도 만들어졌고, 급기야 <남편이 달라졌어요>도 만들어졌다. 심지어 <선새님이 달라졌어요>도 있고, <부모가 달라졌어요>도 있다. 하지만 왜 <아내가 달라졌어요>는 없을까? 어떤 사람에게 달라지라고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그 사람 힘을 가진 권력자이거나, 아니면 아무래도 달라질 가망이 없으니 아예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누구도 완벽할 수 없을 텐데 '아내가 달라졌어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은 분명하다. 감히 실질적인 권력자에게 달라지라고 요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 시청자층인 여성, 그중에서도 아내의 자리를 위협하는 프로그램이 '아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점을 방송 제작진이 감으로 아는 걸까? 아니면 대한민국 아내들은 정녕 바꿀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일까? 24)p.187/문제는 관계의 결핍이 아니다. 상담에서 많은 부부들이 어떻게 부부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자신이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보세요. 상대에게 요구하는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결핍된 것이고, 그것은 당신 스스로 채워야 합니다. 자신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멈추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관계의 결핍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에서 와요. 자신이 타인의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결국 이제는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제대로 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지점에 이른 듯하다. 남편이 아내에게 더 많이 공감해주고, 아내가 자식보다 남편을 위주로 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각자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진정 나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살고 있나? 그것이 나 자신과 가족을 불행하게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제 또다른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자기를 살피고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방해하는 이는 누구이고 또 무엇인가? 대한민국 가정이 망가지고 있는 이유가 단지 일에 중독된 남편이나 자식에게 집착하는 아내 때문일까? 아니면 미친 교육열 때문일까? 25)p.192/비바람이 거세게 불고 집채같은 파도가 몰려와 배는 난파될 위기에 놓여있다. 구명조끼 몇 개가 던져지자 승객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미친듯이 몰려간다. 하지만 구명조끼가 부족하자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선주와 선장, 기관사의 죄를 물으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훨씬 많은 수의 구명조끼가 던져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선주와 선장을 찾아내자던 사람들도 더 늦기 전에 구명조끼를 하나라도 잡기 위해 경쟁에 뛰어든다. 그런데 구명조끼를 잡던 사람들은 구명조끼 중에 더 튼튼하고 편리한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번에는 더 좋은 구명조끼를 잡기 위해 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허름하고 위험한 구명조끼를 잡은 사람들은 좌절한다. 이렇게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 보이는 구명조끼를 쟁취하기 위해 이전투구하고 있는 동안 잘 차려입은 몇명의 사람들은 유유히 캐속선을 타고 사라진다. 난파하는 배는 한국 사회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가정이다. 난파되는 증거로는 줄산층의 몰락, 양극화에 따른 가정의 해체, 아이들의 폭력과 자살, 40-50대 가장들의 자살, 청년실업 등등.. 그렇다면 그 풍랑은 어디에서 불어오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자본의 권력이 유례없을 정도로 강대해진 신자유주의가 그 진원지일 것이다.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생각했던 국가는 실종되었고, 세상은 대자본가 다국적기업의 지배 아래에 놓였다. 우리가 사는 동네 작은 골목 모퉁이까지 스며들어와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그렇다면 구명조끼는 무엇일까? 대학 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이 구명조끼라고 철석같이 믿고 그것을 잡기 위해 모든것을 던져 올인 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죽여가면서라도 필사적으로 대학,대학,대학에 매달리고 있다. 이렇게 부모 자식 사이가 원수보다 더한 관계로 전락해도 대학에 모든것을 걸고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대학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또 한번 속는 것이다. 26)p. 201 /나는 당연히 대학을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집에 돈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럴 만한 실력이 안됐다. 그러나 대학 정원이 30퍼센트나 늘어나고 새로운 대학교의 수가 매년 10 퍼센트 가까이 늘어나자 대학입학의 문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내신제도를 통해 도시의 학생들이나 지방 명문고등학교의 성적 좋은 아이들뿐 아니라 시골 학교, 따라지 학교의 나 같은 어중이들도 대학 입학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원래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은 손해를 봐야겠지만, 그런일은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다. 졸업정원제를 시행하면서 대학은 30퍼센트나 더 많은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1980년 11만 5천명 정도이던 대학 신입생 수가 1982년에는 19만1천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1980년애 85개교이던 4년제 대학수는 1982년에 97개교로 늘어났다. 2011년 대한민국의 4년제 대학은 모두 183개교로 집계되어 있다. 이에 더하여 19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시행한 5.31 교육개혁은 대학교육체제가 급격하게 비대해지는 데 본격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자유주의와 경쟁의 시장원리가 대학교육 개혁에 도입됨으로써 대학 설립 기준이 완화되고 정원도 자율화 된다. 이는 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통해 교육의 질을 담보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저버린 것이었다. 1996년 47퍼센트이던 고조자의 대학진학률은 2011년에 80퍼센트가 훌쩍 넘었다. 이제 대학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요즘 대학에 못 들어가면 아이가 바보 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최극빈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렇게 1980년 졸업정원제와 내신제도를 시작으로 1995년 5.31 교육개혁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은 본격적인 경쟁제도로 재편되었다. 대한민국 가정도 서서히 이런 경쟁체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몸바꾸기를 시작한다. 현재 전 국민을 무한경쟁, 무한도전에 열광하는 시스템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책무를 방기하고 시장경쟁의 원리를 추종했던 국가다. '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다 대학에 올인하라 ! 그러나 서열은 더 강고해지 것이다. 그러니 더욱 경쟁하라.' 누구도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는 자는 없으나 그 명령은 대한민국을 떠도는 망령, 거역 할 수 없는 목소리가 되어 우리 안에서 속삭이기 시작한 것이다. 27)p.205/'대졸자 주류'는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주변화하면서 주류적 가치와 소비를 주도하는 보수적인 집단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민주화를 주도한 486세대는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진보를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삶의 가치에서는 개발독재를 용인하고 경제성장에 목맨 그들의 부모 세대와 결코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새마을 운동의 후예답게 이반 열면 습관처럼 말한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 한다." 이들이 정상이라고 느끼는 감각은 남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 삶이다. 남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삶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삶이며 주류에서 밀려난 삶과 동일시 된다. 정상-비정상, 주류-비주류의 기준은 늘 내가 아닌 남에게 있다. 28)사실 어느 사회든 주류와 비주류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대졸자 주류'가 만들어낸 욕망에 의해 압살되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대졸자 주류가 그 사회에 좋은 가치를 제시하고 모범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전공 지식은 고사하고 시민으로서 가춰야 할 기본적인 교양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태반인 상황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실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가치를 따르는 삶은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대학 신봉자들. 이들은 분열된 자신의 삶에 눈감은 채 시스템의 중력에 몸을 싣고 놀라울 정도로 무책임하게 자신의 아이들을 희생시키면서 시스템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에 휘둘리면서 그 시스템이 안겨다주는 어떤 치욕도 참아내면서 주류의 삶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직시할 때가 되었다. 29)p.216/ 문제는 그 두려움과 공포를 더 강화한 곳이 다름 아닌 학교였다는 사실이다. 인도의 사상가 비노바 바베는 교육의 목적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 학교교육은 두려움을 더욱더 내면화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꾸밈없고 자유로워야 할 시간을 우울하고 억압적인 환경에 얽매여 있어야한다. 학교가 가정환경이나 타고난 재능과는 무관하게 동등하고 공정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세상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현실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곳이 다름 아닌 학교였다. 그리고 돈과 권력이 만들어낸 위계구조를 더욱 견고히 하는 것이 바로 교육제도였다. 성장은 커녕 개인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존감조차 짓밟는 폭력적인 공간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결국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도에 더욱 굴종하는 법을 배우고,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사람으로 키워지는 것이다. 30)p.226/ 사실 엄마는 아이에게 해줄 말이 별로 없다. 부모에게서 들었던, 그토록 지겨워했던 훈계조의 말을 반복하거나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뻔한 이야기 말고 아이와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다. 그토록 지겨워했던 훈계조의 말을 반복하거나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뻔한 이야기 말고 아이와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다. 그저 세상이 얼마나 힘든 곳인지 읊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아이들을 겁박할 뿐이다. 이 세상은 힘세고 잘난 사람들의 것이며 돈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 해줄 말이 없다. 사실 엄마 자신도 그걸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살며서 아프고 깨지면서 알게 되는 것이라고,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된 지금, 엄마는 그걸 알게 되었을까? 어쩌면 진짜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을 계속 미뤄오지는 않았을까? 31)P.233/성민이 엄마는 자신이 그렇게 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도 하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책도 많이 읽으면서 늘 합리적이고 따뜻하고 지적인 엄마가 되려고 애를 써왔는데 말이다. 아이와 심하게 갈등을 겪은 적도 없고 아이를 다그친 적도 없으며,권위적으로 명령하거나 무식하게 강요한 적도 없었다. 교회에서 엄마들끼리 모임을 하면 아이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 아이를 그냥 내러벼두라고 조언했는데 이제 와 생가해보니 그것도 전부 성민이가 알아서 잘해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32)P.236/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처럼 보이지만 실은 무보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이기도 한 것이다. 비빌 언덕이 없는 대한민국 부모들이 믿는 유일한 보험은 교육이다. 성민이네 경우는 대학이 생계형 보험이 아니라 보장형 보험이지만 어쨌든 유일한 보험이라 믿는다. 그 누구도 자식의 미래, 자신의 노후륿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33)p.246/신문 가십난에 나올 법한 무즙 파동은 대한민국 부모들의 대단한 교육열을 말 할때마다 언급되곤 한다. 무즙 파동으로 중학교 입학전형 제도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엿을 만들어 온 부모들은 교육 당국과 입시제도에 말처럼 제대로 엿을 먹이지는 못했다. 그들은 잘못된 문제의 정답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입학시험이라는 제도를 지켜냈을 뿐이다. 사실 그들이 한 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지옥에 허덕이도록 만드는 입시제도를 바꾸거나 개선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아이의 답도 정답으로 인정해주기를, 곧 제도가 자신의 아이를 선택해주기를 애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즙이라고 답한 학생들은 다음 해 5월 전입학 형식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중학교에 입학이 허가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뒤늦게 진학하는 틈을 타 부유층과 유력자의 자녀 열다섯 명도 경기중학교와 경복중학교에 덩달아 부정입학 했다가 들통이 난다. 이들은 애써 엿을 고아 오거나 법정소송을 불사하지 않고도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엿을 만들어 온 부모들은 잘못된 문제의 정답을 만들어내며서까지 입학시험이라는 제도를 지켰지만 이들은 그 제도마저 무시해버린 것이다. 구명조끼를 얻기 위해 모두 애쓰는 사이 누군가는 쉽게 보트를 타고 난파선을 떠날 수 있었던 것 처럼 34).p.248/학교 교육 문제의 핵심은 불안 이라고들 말한다. 부모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다름 아니 불안감이라는 것이다. 내 자식이 남보다 못할까봐, 남에게 뒤처질까봐,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봐 부모들은 전전긍긍한다. 사실 불안만큼 확실한 겁박은 없다. 부모의 불안은 자식의 미래보다, 아니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보다 더 확실하다. 불안으로부터 면제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부모들의 불안에는 좀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실은 시스템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시스템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지 못할뿐더러, 시스템의 문제해결 능력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이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확신이들고 그것에 기대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뭔가 해볼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제로에 가깝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결코 시스템을 바꾸거나 제도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의 미래를 걸지 않는다. 시스템을 향해 자신의 요구를 호소하지 않는다. 그나마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35)경험적으로 우리는 이 사회가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돈과 빽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안다. 제도나 시스템이 있지만 허울뿐이거나 현실을 가리는 하나의 연막에 지나지 않고, 세상은 돈과 빽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겉으로는 제도와 시스템을 따르지만,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각자 알아서 돈과 빽의 세상에 다가갈 수 있는 동아줄을 잡는 일에 고군분투 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에 대한 불안을 반동적이고 투기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불안과 공포는 투기적인 삶을 더욱 조장하는 기폭제가 될뿐이다. 결국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에서 교육은 판돈이 크게 걸린 아슬아슬한 도박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런데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겠다며 악다구니 쓰는 사람들은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헛똑똑이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은 점점 그들을 옥죄어올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것은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한 우리의 책임이 크다. 그 고통은 이제 우리 아이들을 옥죄고 있다. 이제 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하고는 지금 우리가 처한 곤경으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36)p.253/ 부모로서 더 답답한 것은 부모가 문제라는 것을 아니까 더 막막해졌고,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듣고 배우니까 더 막막해졌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고 다그쳐서 성공시키는 것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안다며 멈출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별할 수가 없다. 이대ㅗㄹ 가면 아이가 죽을 것이고 멈추면 자신이 죽을 것 같아서 미칠 지경이다. 37)p.255 /가뜩이나 불안함으로 쩔쩔매는 부모들에게 이것이 진짜 정답이라고 소리치면서 이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이라며 부모를 더 불안하게 하는 자칭전문가 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모두 학원 원장과 다름없는 교육시장의 하이에나들이다. 단호히 말하지만 아이의 미래는 메뉴얼이나 부모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얻을 수 없다. 아이의 미래는 부모가 물려주는 무언가로 그 일부를 채울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부모 자신이 확신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터이다. 그것이 없으니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부모들이 불안한 것은 의사소통 기술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사회적 성공 말고는 자녀에게 물려줄 가치라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38)p.265/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황새부모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서민들의 흉내내기는 지독스럽다. 속된 말로 자신이 뱁새라는 것을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끝까지 황새를 따라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도 천한 것들끼리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오까네와 빽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싸움에서도 자유롭다. 아버지가 외교부 장관이면 딸은 무시험 특별전형으로 외교부에 취직한다. 고위 공직자의 자녀들은 굳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쉽게 꽤높은 직급의 공무원이 된다. 아직도 노량진에는 어떻게든 7급, 9급 공무워닝라도 되겠다며 청춘을 버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원룸마다 학원마다 넘쳐나는데 조선시대에나 볼 수 있던 음서제가 버젓이 해행지는 세상이다. 서민들은 죽도록 서로 싸우고, 가진 자들은 그냥 세습한다. 여기에는 부화뇌동한 우리 자신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황새가 되고 싶어 안달만 뱁새부모들. 그들의 계층 상승을 향한 욕망, 신분 상승을 향한 대열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아이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죽이고 있다. 뱁새를 부정하고 황새가 되려고 전정긍긍할 것이 아니라 뱁새라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당당한 삶을 지켜내면 되는데 말이다. 39)p.270/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죽을 때까지 쇠코에 코뚜레를 꿰어 쟁기를 끌며 마지막까지 워낭 소리를 들었다. 땅만 바라보고 농사짓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달프지만 굴욕적인 일은 아니었다. 자연에는 거짓이 없고 눈가리미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적어도 땅으로부터는 자신의 노동의 가치가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되는 삶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 부여한 가치는 훼손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시에 나가 고등교육을 마친 우리들은 어떤 돈벌이를 하고 있는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모욕과 굴욕을 감내하는 돈벌이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굴욕적인 돈벌이를 내 자식만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모욕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 먹고살고 아이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니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노동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자신이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으므로 자식은 좀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말로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햇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사실 우리에겐 자식에게 전할 의미다운 의미란 게 없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가치를 따르는 삶은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생각 해본 적도, 경험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것은 그저 남들만큼 살거나 남들보다 잘나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누구랄 것 없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되뇌고 있는 것이다. 40)p.271/상담을 하면서 가끔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행복해 보이는지 묻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답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아이들이 내놓는 대답이 날카롭다. 부모님은 늘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 나 같은 결혼을 하면 안 된다, 나같이 공부하면 안된다, 나 같은 성격을 가지면 안 된다 등등. 아이들은 부모에게 실패를 했든, 어려움을 겪었든, 상처를 지녔든 그것이 다 삶에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서 아이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있는데 아이가 자기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기는 못누리고 못 가진것을 모두 누리고 가진 아이들이 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지 답답해하기 전에, 아이한테 그렇게 누리고 갖게 하고 싶은 부모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먼저 느껴야 한다. 그리고 결국 그 결핍을 채워야 할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1)p.273/ 자식이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이 보상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정이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진정한 인정은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되돌아오는 몫이 없을지라도 자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 있는것, 그것만이 인정에 합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정에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권위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그 권위를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내주지 않겠다는 결현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이 일 것이다. 그 누구를 부정할 필요도, 그 누구를 위해 살 필요도, 가망 없는 인정투쟁에 삶을 저당 잡힐 필요도 없이 그저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면 그 뿐이다. 42)p.278/단호히 말해주고 싶다. 아들과 이혼해라. 그리고 제발 독립해라. 성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삶을 자신이 책임지고, 누구에게도 의존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성인식이 없어져서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고자 하는 과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성인식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성인식이 없고 통과의례가 없는 한국사회에서 어른들이 먼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 아이들은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투렵고 불안하고 고부하고 싶은 책임 이라는 과업을 수행하고, 독립적 인간됨 이라는 자기성장의 경험을 먼저 거쳐야 한다. 43)p.280/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아이의 독립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부모자신 이라며, 부모가 먼저 독립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독립하라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부모의 말을 듣고 바로 독립할게요 ! 라고 집을 나갈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독립이 아니다. 부모에게서 독립한다는 것은 부모를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모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보는 것, 이것이 주체적 삶의 시작이다. 


감상평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로 생각했던 국가는 실종되었다.. 라는 말을 듣자 세월호 사건이 생각났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함은 경제적과 같은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심지어 우리는 국민의 기본중의 기본권리인 안전도 국가로 부터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세월호 사건으로 입증이 되었다. 최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이미 국정은 마비가 되었고 국민들은 분노에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며,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겠다는 일명 윗대가리들을 보면 열분이 터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이 지경까지 온걸까?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속해있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교육기관인 대학이 하나의 기업이 되어버렸다. 대학은 더 이상 진정으로 학문을 추구하는 지성인들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학생들로부터 돈을 뜯어 내어 자신들의 배를 불릴 수 있는지 고민하는 기업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정작 나 자신은 없다. 항상 남이 주가 되어 비교하고, 남보다 더 가졌음에 우월의식을 갖고, 가지지 못했음에 패배의식을 가진다. 이것은 사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 이다. 초중고 심지어 대학교에서까지 총 12년을 경쟁 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과 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주류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어떤 사람들이 주류이고 비주류일까?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알아봐야겠다.) 맹목적이다. 한국에서의 대학은 무조건 가야하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머리속에도 대학은 가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대학을 안가면 난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맹목적이다 보니 대학을 왜 가야하는지는 생각도 해본적이 없고, 그러다 보니 대학을 가라고 부추기는 사회가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게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길들여졌고, 또 잘못된 시스템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더 이상 맹목적이면 안된다는 것도 그리고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시스템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스템을 재 정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건 더 이상 나를 위한 것 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후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자식이 생기게 된다면, 내가 겪었던,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안에서 배웠던 것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남들과 다른긴 했지만 그럼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음을 내 자식이 알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 내 자식에게,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너만의 길을 가도 된다는 것을 내가 몸소 증명해보이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좋은 부모 라는 것의 정의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더 힘든것 같다. 그 의미부터 개인적으로 정의를 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 방향을 설립하고, 또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나 혼자 잘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나,남편,아이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까지 도와줘야 하는 환경인데... 이번주 화요일 부모학과 오티 시간을 가졌다. 과목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공부하는 분야가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 욕심내지말자.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말자. 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 이라는 심리가 궁금해졌다. 보이지 않는 윗대가리들은 교육제도 그리고 불안이라는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불안 하기 때문에 남들이 가는 길로 가야한다. 다른길로 가면 내가 잘못가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도대체 불안은 무엇이길래 우리를 이렇게 겁쟁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일까? 또, 이 파트에서는 부모나 자식이나 독립체로서 자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스스로가 책임지는.. 서로 의지하려고 하고, 기대려고 하다보니, 또 그걸 받아야하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불안해지는게 아닐까...불안, 자아독립감.... 지금의 시국과 너무나도 비슷한 예시이다. 결국 1964년이나 2016년이나 약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바꾸었다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우리가 바꾸지 못했다기 보다는 썪은 윗물이 여전히 썪은 윗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인 것이다. 그럼 1964년에 이 비극을 끝내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입시제도가 자신들의 자녀들을 택하도록 만드는게 아니라, 잘못된 입시제도 자체를 바꾸어 달라고 했어야 하는걸까? 그럼 그 시절 행해지고 있는 입시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이야 정보의 시대여서 여러 뉴스를 비롯,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때는 그렇지도 않으니 생각을 공유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은 , 1964년에는 여러 환경적 제약으로 바꾸지 못한걸 50년이 지난 지금은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점을 똑바로 인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사회 논점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시스템을 믿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믿지 못하지만 그래도 잘 굴러가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무기력하다. 우리가 나서봤자 바뀔것이 있을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나서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였다. 지금까지 시스템의 굴레에서 바보같이 당했으면 되었다.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같은 비극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비참히 짓밟아지는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배영재

인상 깊은 구절(대한민국 부모)


<1장> p.27 서울시 소아청소년 광역 정신보건센터가 2010년 서울 시내 중고교생 3만7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울증 학생 선별검사'에서도 17.2%인 5295명이 평소 우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p.32 자신이 조금이라도 뭔가 하는 시늉을 하면 엄마가 더 잘하라고 달려들면서 점점 더 자신을 삼킬것이다. p.43 이 청년은 어느 자리에나 '내가 잘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고 왜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삶을 살고있는지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중략) 그것은 학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기에.. p.45 사실 이들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지진아'이며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p.50 상잠자는 그 모든 이야기가 무척 재미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어린아이로만 취급하지 않고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좋았다. p.53 상민이는 부모에게 배울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의 지식과 교양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빤히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싶어하는 궁금한 문제에 대해 부모는 대답해 줄 수 있는 능력도 그럴 의사도 없다는것도 알고있다. p.68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같은 질문 자체를 생소하게 여긴다. 부모가 자신에게 원하는것, 부모가 싫어하는것은 부모 자신보다 잘 아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것은 정작 잘 모른다. p.78 이런 아이들이 더욱 문제인것은, 겉으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목표를 달성하게 될까봐 불안해 한다는 점이다. <2장> p.120 한국 가정에서 개는 가족간의 정서적인 소통과 지지가 불가능해진 현재의 상황을 가려주는 존재가 아닐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향해 온갖 과잉 욕구를 앞세우면서 이를 만족 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정을 철회하고, 정작 자신들이 누리고 싶은 정서적인 위안이나 애정은 표현하지 못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수 있는 고분고분한 대상에게 그 사랑을 쏟는것은 아닐까? p.127 누가 이렇게 아버지들을 찌질이로 전락시킨 것일까? 아이들이 파악한 바로는 '미친 교육열'이다. 미친 교육이 아이들을 잡는것으로도 부족해 아버지를 아버지의 자리에서 내몰았다. <3장> p.162 한마디로 가족은 '끊임없이 요구'하는 존재이다. '끊임없는 요구'. 그 요구의 대부분은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 p.163 공간이 하나의 상징적 권력을 나타낸다면, 옛날 아버지의 권력은 집 전체였지만 지금 아버지의 권력은 집 어디에도 없다. p.173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으며 공교육을 빈사 직전에 몰아넣으면서도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공허한 말을 남발하는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가 별로 없어보인다. p.174 그래서 부부간 많은 갈등이, 남자는 아내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고 여자는 남편에게서 사랑받고 싶어하는데 서로가 그것을 주지 않는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중략) 관계가 아주 나쁜 부부만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p.183 어떤 사람에게 달라지라고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그 사람이 힘을 가진 권력자이거나, 아니면 아무래도 달라질 가망이 없으니 아예 요구하지 않는것이다. p.187 "먼저 자신이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보세요. 상대에게 요구하는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결핍된 것이고, 그것은 당신 스스로 채워야 합니다. (...) 모든 문제는 관계의 결핍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에서 와요. 자신이 타인의 지옥이 될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4장> p.208 장하준의 저서<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책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 이루어져야한다. p.218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부모에게 배운것은 '오까네(돈)'와 '빽'이 없으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제대로 된 대접을 못받을지 모른다는, 어쩌면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 지금과 같은 경쟁적인 체제를 만들어 낸것은 단지 제도와 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p.219 나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로는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에 가야한다고 하지만 결국 돈과 빽이 있는 직업이나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지위를 갖기를 바라는 것이다. p.230 도대체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운것일까? (...)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성공외에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말해줄 것도,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다는 것이다. p.248 우리는 실은 시스템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시스템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지 못할 뿐더러, 시스템의 문제 해결 능력도 믿을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5장> p.268 부모의 자기 부정은 이제 두 세대를 흘러왔다. '1970~80년의 자식'과 '2000년대의 자식'들이 공유하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는 부모처럼 되면 안된다'는 주문을 똑같이 외우는 자식들이라는 점이다. p.277 즉 성인이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자립했고,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이다. p.297 삶의 기준을 바꾸고, 삶의 기준을 회복하자. p.302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살아있음'을 긍정하는 일이다. p.304 부와 신분 상승이 아닌, 인간이 가진 소중한 사회적 본능인 연대의식과 자신의 노동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해야한다. 


감상평


충격적이다. 이것은 극본에서나 보았을 만한 이야기였는데 상담을 통해 나왔던 이야기라는 것이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준비된 부모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면 이 이야기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부분에 공감을 하면서 반면교사의 본보기로 삼아야겠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 책이 나를 도와준 점은 문제를 제시하면서 생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최종 의문점까지 이끌어 낸다는 점이다. 순서대로 적어본다면, 1.소통의 부재 2.준비의 부재 3.제도의 부재 의 순서대로 말할 수 있겠다. 소통의 부재는 말 그대로 자녀와 부모간의 소통의 부재를 먼저 예로 들면서 실제의 자녀와 부모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가 얼마나 괴리가 심한지 알 수 있다. 지난 부모학과 수업에서 잠시 나왔던 이야기지만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환경으로 다른 세대를 해석하려 한다면 많은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세대는 그에 대한 환경과 지식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소개된 자녀 세대에서는 환경이 다륾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대로만 강요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소통의 부재가 발단이었다. 준비의 부재란 부모로서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가정을 꾸리기 때문에 자식 세대의 생각이나 문화를 공감하지 못하는 환경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제한된 환경에서 많은 것을 이뤄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 희생들 가운데 가족문화가 자리 잡혀있다. 가족의 형태도 바뀌면서 부모로부터 자식이 받을 수 있는 유산들이 바뀌어 가면서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방법또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은 나의 부모님과도 자녀교육의 가치관에 대하여 몇가지가 충돌하곤 한다. 시대 상황과 생각에 맞는 자녀 교육도 변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의 부재는 말 그대로 국가의 차원에서 가정을 보살피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점들이 발전하면서 성과를 내고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가정에 대한 제도는 발전해야 할 점들이 무수히 많다고 본다. 가장 먼저 교육이 이루어 지는 가정에서 교육이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에 그 문제는 연쇄적으로 커져간다. 그 문제의 결과물이 이 책에서 나온 사례들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해결안들이 제시된다. 나는 해결안에 대해 격렬하게 공감했다. 내가 당장 마음으로 공감하면서 실천 해 나가야 할, 마지막 해결안으로 제시된 것을 되새김질 하면서 이 짧은 감상문을 끝내고 싶다. ‘아버지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


김형섭


1.26p 어릴 적 별다른 문제없이 잘 자란 사람은 부모가 되어서 아이에게 자신을 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이에게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자신이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신도 부모로부터 그렇게 받고 자랐으므로 아이에게 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2.34p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 무시당한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센 척한다. 상대와 대립의 관계에 섰을 때 좀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내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피운다. 이 동물적인 대처를 아이가 답습한다.


3.35p 아이들은 어른들이 약간 말이 많아지거나 언성이 높아지면 싸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자신에게 뭐라고 하면 싸워야 하는구나. 잘못한 것이 있어도 일단 부딪쳐야 하는구나'라고 입력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것이 차곡차곡 학습된다.


4.36p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험한 일 앞에서는 욱하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사소한 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되는 일에도 부모가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들면, 아이는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부모가 항상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지겠는가. 주변이 온통 적군이고 싸워야 할 사람들이라고 느껴진다. 언제 누가 나를 해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5.37p 잘 기다려 주려면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를 나와 동일하게 생각하거나, 아이를 나의 소유로 생각하면 기다리지 못한다. 아이가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내가 계획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면 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얼른 달려가 방향을 돌려놓고 싶어진다. 그럴 땐 아이가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


6.41p 스무 번 중에 열아홉 번은 친절한 엄마인데 한 번은 광분한다면, 차라리 그 열아홉 번을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이 아이한테는 훨씬 이롭다. 열아홉 애쓴 것이 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를 쓰는 것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한 번을 안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7.47p 그녀는 누구보다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이 뭔가를 똑부러지게 처리를 못할 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문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갈등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8.72p 부모가 무섭게 대하면 아이는 순간 조용해진다. 참고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아이는 살기 위해서 그런 척하는 것뿐이다. 연령에 맞춰서 적절하게 키우지 못한 감정 주머니는 언젠가는 사달이 난다. 언젠가 폭발한다. 그떄가 사춘기일 수도 있고, 어른이 된 후일 수도 있다.


9.99p '화'나 '분노'라는 감정을 가졌다는 이유로 혼이 나고 벌을 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아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고, 공감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적절하게 왜곡되지 않고, 더 다양하고 바람직하게 발달해 나간다. 


10.106p 아이의 공격성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공격성이다. 부모는 공격성을 갖되, 공격적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가족의 보호를 위한 타당한 이유에서 대적할 상대에게 항의할 수는 있지만, 그저 자기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나오는 공격적인 모습은 비사회적인 모습이다.


11.115p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은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가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쳐야 한다.


12.131p 질문할 때 이미 바라는 답이 있다는 것은 매우 통제적인 상황이다. 아이의 말대꾸를 대할 때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이가 말을 하고살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이의 태도가 마치 대드는 것 같아도 끝까지 들어 줘야 한다. 중간에 끼어들어 아이의 말을 끊고, 그 내용과 태도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13.147p 잘 달래지지 않는 아이는 부모를 닮은 면이 있을 수 있다. 배우자의 예민함을 닮아서 아이가 우니까 배우자가 더 밉기도 하지만, 그 배우자 또한 자신이 예민하기 떄문에 아이가 달래지지 않는 것을 더 견디지 못한다.


14.190p 육아는 인간의 성장을 도와주는 여정이다. 누구나 인간적인 미성숙함이 있고, 이것은 대체로 육아 초기에 새삼스럽게 발견되는데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당황한다. 그중 소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 결국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그중 다수는 그러지 못한다. 너무 힘들어서 서로 탓을 하며 헐 뜯고, 아이 탓을 하고, 자기 탓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는다. 심각한 우울증이 생기는 부모들도 꽤 많다.


15.198p 식습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단체 생활을 시작하면 남이 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부모가 그렇게 몰두하는 먹는 문제는, 성인이 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대부분 잘 먹게 되고, 편식도 고쳐진다. 또한 잘 먹지 못한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성인이 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성격이다. 성격이 나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런데 어릴 떄 아이와 먹는 것으로 실랑이를 심하게 하면, 아이 성격이 나빠진다. 먹는 것으로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가 많은 일이다.


16.214p 아이가 똑 부러지게 못할 떄, 가장 필요한 것은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똑 부러지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잘할 수 있도록 똑 부러지게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17.222p 훈육은 가정교육의 첫 단계다. 훈육은 아이가 성질이 나빠져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강압적이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허용적이어도 안 된다.


18.243p 의존 욕구는 사랑받고 싶은 대상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힘들 때 가까이 있고 싶은 대상과 가까이 있고, 위로나 보호가 필요할 때 그 대상에게 보호받고 싶다고 느끼는 것이다.


19.252p 어설프게 해도 칭찬해 주고, 늦어도 격려하고 기다려 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시도하고 점점 나아진다. 남편이 설거지를 할 떄와 마찬가지다.


20.268p 쉬운 것을 잘 못하는 아이를 대할 떄 부모는 나는 지금 어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저히 아이의 발달 정도에 맞춰서 바라보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 발달 수준에 맞춰서 어떻게 도움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


21.286p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매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해 받게 되는 불이익으로 늘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가장 안전하고 만만한 대상에게 그것을 폭발시킨다.


22.290p 욱을 다스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화살이 되어서 내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한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오롯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23.311p 지금의 부모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한 물질과 성장중심주의적인 시대를 거쳐 자라온 세대다. 그러다 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는 과도하게 몰두하면서 보이지 않는 내면적 가치관의 중요성은 간과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자신들이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다 보니 자녀에게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교육한다.


24.321p 강압적인 육아로 감정적 핍박을 받은 아이는 평생 감정을 수용받지 못한 의존 욕구가 남는다. 그래서 누구든 나를 잘 대해 주지 않거나 이해해 주지 못하면 큰 분노가 생긴다. 그러면 쉽게 욱하게 된다. 또한 감정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릴 적에 공감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줄을 모른다. 


25.326p 부모와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그림 엄하게 하지 않아도 훈육이 잘 된다.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잘 안 된다면, 지금 나와 아이의 애착이 어떤지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애착이 불안정하다면, 어떤 훈육의 방법을 찾는가가 먼저가 아니다. 부모가 아무리 훈육을 잘해도, 아이에게는 잘 안 먹힐 수 있다. 애착부터 안전하게 형성해야 한다. 관계부터 친밀하게 회복하는 것이 먼저다.


<감상평>

내가 읽었던 책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책이다. 저자의 인지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문장 구성이 참 잘 짜여져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30살 청년이 부모교육이라.. 물론 나는 아직 부모가 아니며 심지어 연애를 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육아를 잘 한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를 적절히 소화해 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것을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아이와의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 이것은 아이(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기 이전에 부모 자신이 갖고 있는 내면적 결핍이나 부족함을 들여다봐야 원만한 육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2015년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 성인의 50%가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중 10%는 당장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욱'은 상대방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미숙함으로 자초된 감정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치료되지 않는다. 사실 본인도 원부모로부터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여 공부하여야 한다. 세상이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수동적인 교육에 익숙해져 이런 중차대한 부분을 간과하고 배우려하지 않는다면 한 두 번의 부딪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평생을 괴롭히는 무취무색의 적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론과 실전은 크게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없이 실전에 뛰어들 경우 모든 상황은 운에 맡겨질 뿐 제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기초가 바로 서야 응용도 가능하다. 그때 그때 임기응변 식으로 결혼생활과 육아를 대한다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성교육, 돈교육에 이어서 부모교육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분야라는 것을 부모학과를 통해 체감을 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부를 할 계획이지만, 많은 예비 부모에게도 지식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공부해나가야 겠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아이는 참 복 받은 아이일 것이다.


김태양

저는 전공교재 예비부모교육 보고 나서 입니다 


Q. 인상 깊은 구절


1. p15 여성취업률이나 이혼율의 증가와 같은 사회변화의 영향으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모역할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2. p20 개인의 신체적인 안전과 관련된 기본적인 욕구에서 출발하여 정신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한 개인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부모역할의 궁극적인 목표 3.p39 이혼으로 인해 가족구조의 변화를 경험하는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한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4.p41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보다 적응력있게 키워나가는데에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5.p43 최근에는 핵가족화, 소가족화 경향으로 인해 성장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부모역할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자녀양육과 관련된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부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있다. 6.p68 21세기에 요구되는 부모교육은 기존의 부모교육을 바탕으로 자녀들이 변화하는 사회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지적인 능력과 앙루러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7.p71 예비부모들은 임신기간 중의 건강이 이후의 건강과 직결된다 8.p107 출산은 대부분의 경우 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만, 때로는 난산이나 조산과 같은 이상분만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9.p113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 출산에 대한 정신적인 준비나 아기에게 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해야한다. 분만이 반드시 예정일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임신 말기에는 미리 출산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10.p115 영아기는 인간발달의 여러 영역에서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신체발달이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언어능력도 발달한다. 11.p120 이유를 시도하는 시기는 아기의 발육이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야 하며, 강제로 젖을 떼거나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아기가 질병에 걸려 있거나 식욕이 없는 여름철에는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12.p135 헬렌 켈러에 의하면 듣지 못하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시각장애인은 사물로부터 고립되지만 청각장애인은 사람으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이다. 13.p137 영아기 말이 되면 미각은 매우 예민하게 된다. 이시기에 음식에 대한 선호가 급격히 발달하기 때문이다. 영아기 이후에는 새로운 음식을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14.p137 삼칠일 된 아기에게는 미역국을, 백일에는 밥과 국을 그리고 첫돌에는 떡과 과일의 맛을 보여줌으로써 영아의 미각의 발달을 도와주었다. 15.p156 언어발달의 첫 단계는 울음이다. 울음은 아기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소통수단이다. 16.p156 초기의 울음은 아기가 왜 우는지 이유를 구분할 수 없는 미분화된 울음이지만, 점차 우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분화된 울음으로 바뀌게 된다. 17.p156 울음의 패턴이나 고저, 강도에 비추어 아기가 배고픈지, 졸린지, 화가 났는지 혹은 고통스러운지를 알 수 있게 되면서, 울음은 보다 정확한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18.p156 2~개월경에 나타나는 옹알이는 언어와 유사한 최초의 말소리이다. 19.p157 생후 1년경이 되면 영아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단어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20.p160 일차정서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기쁨, 분노, 공포 등이다. 기쁨은 미소나 웃음 등으로 표현되며, 건강한 영아일수록 기쁨의 표현이 명확하고 빈번하게 나타난다. 21.p179 영아가 특정인과 애착을 형성하게 되면, 낯선 사람이 다가오거나 부모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면 큰 소리로 우는데, 이런 반응을 낯가림이라고 한다. 22.p179 낯가림은 낯선 사람 그 자체에 대한 반응이 아니고, 영아가 익숙해 있는 얼굴과 낯선 얼굴의 불일치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다. 23.p181 출산 이후가 반드시 불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며 아기의 탄생으로 결혼만족도가 더 증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부모기는 하나의 위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24.p181 첫 아이의 출산은 두 사람만의 결혼 생활에 큰 영향을 초래하며 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이들은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가사노동자로서의 과중한 역할부담이나 가족 구성원과의 상호작용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25.p181 많은 여성들은 부모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며, 육아기술 등의 미숙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특히 취업여성은 자녀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동시에 막중한 가사노동으로 인한 수면시간의 감소나 만성 피로에 시달리며 항상 시간에 쫓긴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일하면서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그 결과 부부간의 대화시간도 감소하며 배우자에 대한 애정문제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직업을 포기한 경우에도 이로 인한 수입의 감소 등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경험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산후 우울증을 경험하는 여성도 상당수 있다.


Q. 감상평


처음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다 이점에서 부모교육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나와 같이 함께했던 나의 부모에게서 배우는것과 전문가를 통한 교육, 그리고 책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부모교육에 대해 알아보고자 이 예비부모교육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은 부모교육에 대해 서울권 학교등에서 조금씩 강의가 나오고 교재로 쓰고 있다. 부모됨의 동기, 부모역할의 목표, 부모역할의 영향, 현대사회의 부모역할, 예비부모교육의 개념, 태내기의 발달과 부모역할, 영아기 발달과 부모역할등부터 청년기까지의 부모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으로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이 책은 부모교육에 대해 탄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씩은 관심을 두었던 단어들이 있었다. 옹알이, 미숙아, 배변훈련, 다운증후군, 남근기, 낯가림, 아버지의 부모역할, 태아MRI 등 내가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 좀더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솔직히 어릴때는 예비부모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단한번도 없었다. 요즘은 부모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부족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부모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없다는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회이기에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와 교육의 부족이 부모역할의 불만족스러움을 야기하고 그로인해 최근에 아동학대, 방임 등과 같은 사건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점에서 이번에 열정대학을 통해 '부모학과'가 개설 된점이 지금은 소수의 인원들만의 시간이지만 점차 확대되어 전문적인 학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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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송이 2017/01/09 00:31:24

우왓 :) 영재 다시 올렸구나 ! 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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