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 2015-04-13
험은 '폭넓게', 공부는 '스스로'
섹스학 고기학 이색학과
총출동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지 과목으로 만들어주는 학교가 있어 화제다. 바로 열정대학이다.
 20대를 위한 1년제 진로교육기관인 열정대학은 학생이 직접 과목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파격적인 시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가 알랭 드 보통에 대해 공부하는 알통학과, 의뢰자가 짝사랑하는 상대와 잘 되도록 중간에서 도와주는 연애조작단학과 등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전공이 된다. 그남자그여자, 텃밭가꾸기, 번지점프 등 희한한 선택과목도 많다.
기존 대학 교육과 서로 도우며 함께 존재하는 '공존(共存)학교'인 열정대학의 세계로 들어가봤다.


(좌) 서울역 앞에서 플래시몹을 마친 열정대학 학생들이 밝은 표정으로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우) 자기분석여행에 참여한 학생들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성인용품점이라 하면 으레 어두침침하고 정육점의 붉은 조명이 비추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간 명동 '부르르 아울렛'은 그런 편견을 깨주는 곳이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가게 안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양하고 예쁜 콘돔은 기본이고 젤과 기타 등등. 처음에 한 개 정도는 구입하자고 이야기했었는데 각자 몇 만원어치씩 구입했다." 

열정대학 섹스학과 4기 김슬기씨(26)의 성인용품점 방문 후기다. 섹스학과 학생들은 성인용품점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다 함께 그곳을 방문하는 현장학습을 실시했다. 최근 개설된 고기학과에선 매주 월요일 만나 고기에 얽힌 역사철학을 공부하고 주량 대신 자신이 하루 섭취하는 고기 양인 '육량(肉量)'을 점검하는 등 재미있는 시도가 한창이다. 고기학과에 재학 중인 김태양씨(22)는 "앞으로 직접 드라이에이징(고기를 저온에서 장시간 건조해 풍미를 높이는 기법)도 시도해볼 계획"이라며 웃었다. 모든 수업을 학생이 자발적으로 개설하고 운영해나가는 열정대학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열정대학은 이름과 달리 진짜 대학은 아니다. 정부로부터 공식인증을 받은 교육기관도 아니다. 다만 20대 진로교육에 뜻을 둔 소셜벤처기업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이윤창출보다 우선시하는 기업으로서, 정관 57조에 "이윤의 3분의 2 이상을 청년 진로교육에 재투자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열정대학은 대안학교가 아닌 공존학교다.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한 기존 대학의 장점을 인정하되, 관심분야의 다양성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서로 도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다.

최대 강점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성이다. 하고 싶은 일을 과목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존 교육에서 보기 힘든 색다른 시도가 가능하다. 아티스트웨이학과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작곡, 그림, 사진에세이, 피규어(영화만화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축소재현한 인형) 등 종류에 제한 없이 개인 창작물을 만들어 전시한다. 잘먹고잘살기학과에서는 체중감량이 아닌 건강을 위해 웰빙(well-being) 식습관과 운동을 함께 지켜나간다. 서울의 역사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서울 방방곡곡을 누비는 서울스토리학과도 있다. 전공이 이렇게 다양한데 교수는 몇이나 있을까. 특이하게도 유덕수 대표 말곤 따로 지정된 선생님이 없다. 학과 구성원끼리 직접 관심분야 책을 읽고 토의하고 전문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존 교육체제와 전혀 다른 시스템이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정대학은 특이한 시도에 그치지 않고 여러 곳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2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청년 등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으로 선정됐으며, 제7회 'SK 세상 사회적기업 콘테스트'에선 마이크임팩트 등 쟁쟁한 경쟁상대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유 대표는 아름다운가게의 '뷰티풀펠로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뷰티풀펠로우는 사회혁신기업가를 발굴해 장기간 지원함으로써 사업 안착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흥미 위주 활동이 중심인 것 같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찾아주는 게 열정대학의 전부는 아니다. 좋아하면서도 잘하고, 그러면서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을 찾아주는 게 핵심이다. 열정대학을 찾은 안영일 DOG(프레지 제작 전문기업) 대표는 강연에서 "똑같이 좋아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했는데 누군가는 장인이 되고 누군가는 오타쿠(한 분야에 광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가 되는 이유가 뭘까. 사회와 접점이 있으면 장인이 되고, 없으면 오타구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분석가 자신에게 맞는 진로 찾아 취직해
신입생이 열정대학에 들어오면 유 대표는 제일 먼저 심층적인 자기 분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도록 한다. 몇 가지 키워드가 간추려지면 그것만큼은 가능한 한 경험해봐야 한다. 폭넓은 경험이 천직(天職)을 찾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열정대학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진로를 발견하는 경우가 흔하다. 더 나아가 진로교육의 핵심인 관심분야 취직에 성공한 사례도 속속 생기고 있다. 스물다섯 살 김한 군은 열정대학에서 데이터 분석가라는 진로를 발견한 뒤 올해 초 종합IT(정보기술)서비스 기업인 LG CNS 입사에 성공했다. 그는 "열정대학을 다니면서 '자기분석여행'과 '최강의 자기분석'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을 알게 됐다"며 "특히 학계, 현업 전문가 인터뷰는 진로에 확신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여군장교, 뮤지컬 연출가 등 자신만의 꿈을 찾아 가는 학생도 있다. 열정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대부분이 대학 1~2학년생으로 어린 만큼 몇 년 후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더욱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열정대학의 자율성에서 오는 한계도 있다. 담당 선생님 없이 학생이 직접 수업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만큼 중간에 활동이 흐지부지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고자 만든 게 수료 제도다. 학생들은 어려운 졸업 대신 일단 수료를 목표로 열정대학에서 활동한다. 10주로 구성된 한 학기 내 ㅿ독서의즐거움 ㅿ행복한글쓰기 ㅿ자기분석여행 ㅿ강점분석 ㅿ최강의자기분석 ㅿ전문가인터뷰 ㅿ얼리버드프로젝트 ㅿ전공활동 ㅿ열정특강 ㅿ봉사활동 총 8개 필수영역에서 한 과목 이상씩 수강하면 '학기 이수'가 된다. 두 학기를 이수해야 비로소 '수료'로 인정된다. 학점 제도도 있다. 특이한 점은 처음에 A+로 시작해서 지각 경고가 쌓이면 학점이 떨어지고 이벤트 참여 등 성실히 활동하면 다시 올라간다. 그러나 이에 관심 없는 학생을 강제로 참여시킬 방법은 없어 학생의 의지가 중요하다.

입학은 대한민국 20대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설립초기 5대 1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보이다가 학생 선발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은 2대1 정도가 됐다. 신입생은 오로지 서류만 보고 뽑는다. 소속 대학 및 스펙(spec)은 일절 기재하지 않는 대신, 진로탐색의 간절함과 성실히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을 본다. 한 학기 등록금은 15만원이다. 학생들은 저렴한 가격에 세미나실, 강의실, 도서관 등 모임장소를 제공받으며 열정대학이 초청한 명사의 강연을 주기적으로 들을 수 있다. 전공과목은 토의하기 좋은 인원인 2~6명으로 구성되며,
관련분야 책 읽기, 전문가 인터뷰, 프로젝트 진행 등으로 구성된다. 본인만 희망하는 과목은 선택과목으로 개설해 혼자 운영할 수도 있다. 현재 재학생 규모는 250여명이다.

정부 등 외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많은 사회적기업과 달리 열정대학은 등록금만으로 원활한 경영모델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등록금을 과거보다 대폭 인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저렴한 수준이다. 열정대학은 향후 진로교육을 20대뿐만 아니라 전 연령층으로 확장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청년이 하고 싶은 일을 밀고 나가려면 부모 등 윗세대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특히 장 노년층이 유력하다. 젊은 피로 이뤄진 열정대학에 부족한 경험을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보다 높은 등록금을 받아 지속가능한 경영을 이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총장님' 호칭보다 '덕수쌤'이 더 편해요
"고등학교 때까진 부모님, 선생님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고 배우잖아요. 막상 대학 가면 '이제 다 컸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이 바뀌어요. 하지만 학생은 그저 주어진 교육만 받아먹었을 뿐 한 번도 알아서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죠. 그러니 성인이 돼서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 채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지난 3월 6일, 용산에 위치한 열정대학 패션스투디움에서 유덕수 열정대학 대표(35)를 만났다. 학생들에게 '총장님' 대신 '덕수쌤'이고 싶다는 그는 작은 체구에 온화한 인상을 풍겼다.

유 대표는 한때 스티브 잡스 같은 CEO(최고경영자)를 꿈꾸는 야망 있는 청년이었다. 그의 책상 앞에는 강남 100억짜리 빌딩 사진과 '오늘 소주 마시는 걸 참으면 내일 양주 마신다'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2007년 '유학팩토리'라는 이름의 유학원을 차렸고 청년 사업가로 TV에도 나오는 등 제법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마치 '아주 좋은 물건을 소비한 것처럼' 공허했다. 그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성공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정작 유덕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뭘 원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20년 넘게 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왜 아무도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유 대표는 유학원 보조사업에 불과했던 열정대학을 제대로 된 진로교육 프로그램으로 탈바꿈시키기에 이른다.

열정대학을 본업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약 3년 전 일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한 여학생에게 이메일로 진로상담을 해준 일이 큰 계기가 됐다. 그녀가 보내온 답장에는 '덕수씨 덕분에 오늘 하루가 따뜻해졌어요'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그의 심장이 행복감에 '미칠것처럼' 쿵덕거렸다. 또 다른 계기도 있었다. 유 대표를 찾아온 한 학생은 "하고 싶은 일을 찾더라도 부모님과 주위 기대를 저버리고 그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 학생에게서 열정대학과 유학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고민 끝에 유학원을 완전히 접고 열정대학에 올인(all-in)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유 대표는 "위대한 스승은 존재 자체로 가르침이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학생들에게 말뿐인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열정대학을 운영하며 청년에게 꿈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그는 제일 행복하다.


사회 돕는 성교육 자전거 교육 전문가 꿈꿔
열정대학을 2년째 다니고 있는 이성원씨(28)는 현재 섹스학과를 운영 중이다. 파격적인 이름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성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건강한 성 가치관을 함양하고자 만든 학과다. 이씨는 이곳에서 성교육 전문가라는, 자신에게 딱 맞는 진로를 발견했다. 그는 "처음에는 성에 대해 배우고 싶은 호기심으로 섹스학과를 시작했는데 전공 구성원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 걸 목격하면서 성교육 전문가가 되기로 꿈을 굳혔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에 있어 수동적이고 남모를 아픔이 많았던 여성들의 변화는 그에게 큰 보람을 안겨줬다. 그가 말하는 성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주체적인 성 가치관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현재 웹툰 작가와 협업하고 푸른아우성에서 성교육 강사 과정을 밟는 등 성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영열씨(24)는 열정대학에서 '에듀바이클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교육(edu)과 자전거(bike)를 결합해 만든 단어다. 그는 서울 내에서는 무조건 자전거로만 이동하며 평상시에도 자전거 유니폼을 교복처럼 착용할 만큼 자전거 마니아다. 그는 "자전거가 주는 교훈이 참 많다. 밟은 만큼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오씨는 한강 한 바퀴를 자전거로 완주하는 과목을 운영하다가 지금의 꿈을 갖게 됐다. 실력이 제각각인 사람 35명을 데리고 자전거로 한강 한 바퀴를 돌던 날, 사람들은 한강 한 바퀴가 도대체 몇 km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알려주지 않았다. 실제론 75km였다. 사정이 생겨 완주는 못했지만, 다섯 시간에 걸쳐 50km를 돌고 나서 "여러분이 지금 돈 거리가 50km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놀라고 행복해하는 표정은 그를 전율시켰다. 그는 "몇 km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자전거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림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 : 정은지 인턴기자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 (eunji110@gmail.com)
사진 : 오장환




* 기사내용 정정합니다.
- 열정대학에서는 선택과목, 전공과목, 봉사활동,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독서의 즐거움, 열정특강, 드림온, 전문가 인터뷰 총 8개 필수영역에서 한 과목 이상씩 수강하면 '학기 이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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